대한제국시기 주요사건 정리 :: 삼국간섭, 을미사변, 아관파천, 을사늑약 의의
대한제국시기 정리
1. 삼국간섭
배경과 과정 :
청일전쟁 결과 1895.4.17. 시모노세키조약 체결하면서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
러시아는 당시 동아시아 진출을 계획하는 중이었으며 일본이 동아시아를 장악하는 것을 견제.
4.23. 러시아 주도하에 독일․프랑스가 요동반도 환부를 권고하는 각서를 교부(삼국간섭)
일본은 국력이 러시아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부득이 굴복
일본여론은 와신상담을 주창, 대로주전론(對露主戰論)이 대세. 대대적인 군비확장을 추진
결과 :
제 1차 갑오개혁 이후 반일친러적 세력이 성장.
삼국간섭을 계기로 일본세력의 쇠퇴, 차관제공 문제 등으로 일본의 조선 내 입지가 불안해짐.
일본은 이 문제를 무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준비를 함.
우익적이고 무단적인 미우라 고로를 공사로 부임 시킴
2. 을미사변(乙未事變)
배경 :
미우라 부임 이후 친러파의 득세가 더욱 촉진. 미우라는 칩거하며 상황을 예의주시.
과감한 수단(명성황후 제거)을 통하여 국면전환을 도모.
과정 :
대원군과 해산위기에 직면한 훈련대를 이용하여 쿠데타를 위장하고 낭인들을 동원하여 명성황후를 시해
대원군의 시해계획 사전인지 여부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음
이 광경을 러시아인 사바틴과 시위대 교관이었던 미국인 다이 등이 목격
미우라는 입궐하여 고종 및 대원군을 알현하고 친일내각을 강제로 수립
결과 :
제적 비난과 압력은 물론 조선에서 반일운동을 유발시켜 일본의 조선지배 정략이 수포로 돌아가게 됨
명성황후가 시해당하자 평소 비판하던 유림세력이 국모시해를 빌미로 의병을 일으킴. (1차 을미의병)
조선측 가담자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망명
무장친위대에 의한 춘생문사건 발생. 일본은 이 사건을 국왕탈취사건으로 규정하고 국면전환 및 시해사건 무마용으로 적극 활용
3. 아관파천 ( 임금이 러시아공사로 피난을 간 것)
배경 :
일본은 춘생문사건으로 상황을 반전시킨 후 조선정부를 핍박하여 각종 정책(태양력채용, 군제 개편, 단발령 실시)을 추진
전국 도처에서 반개화․반일적 성격의 의병이 봉기.
의병진압을 위해 서울의 군사력을 지방으로 파견. 이것은 조선정부 및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 완공 전까지 동북아의 안정을 원함. 따라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독점적 영향력을 배제하고자 함. 조선을 보호국화 하려는 의지는 없었음
당시 고종은 민비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도 언제든지 살해 될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림.
고종이 러시아에 지원을 호소.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임
결과 :
조선정부는 친일내각 교체, 친미파들을 중용함. 일본이 실시한 정책들을 철회하는 등의 조치를 함
군대를 러시아식으로 재편.
일본은 고종이 러시아 대사관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음.
방어시설을 구비한 후 고종이 환어함.
그러나 러시아 정부의 소극적 지원으로 차차 반러적 기류가 생겨남.
4. 대한제국의 성립 ★
배경 :
러시아는 시베리아철도를 통한 동아시아 육로진출을 희망.
일본은 한반도를 통한 대륙진출 희망. 청은 예전부터 조선과의 사대관계.
한반도를 둘러싼 삼국의 견제가 심화되고 있었음.
이에 조선은 칭제건원을 통해 외세의 간섭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겨남.
양전지계사업, 군사력 강화, 이주교민 보호 정책 등을 실시
의의 : 청과의 사대관계를 공식적으로 청산, 외세로부터 자주독립을 희망한다는 의지를 선언
한계 :
독립협회의 시정개혁 건의 등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함.
재정적 기반없이 추진한 실효성 없는 개혁 정책이었읍. 민중을 희생시켰다는 비난.
외세의 기술과 자본에 의지하여 스스로 근대화로 나아가기위한 기술을 축적하지 못함
조정내의 부정부패를 개선하지 못함
5. 을사늑약 ★
배경 :
러일전쟁 발발. 일본이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한 관문, 러·일·한 모두 예상했던 상황
대한제국은 중립국 선언.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고 한국 내에 일본군을 파견, 주둔 가능하게 함. 정부와의 체결이 아닌 비정상적 과정의 조약이지만 발효됨
이후 일본에 황무지개척권을 양여하고 제 1차 한일협약을 체결하면서 실질적인 권력이 일본에게 넘어감.
화폐조례를 공포함으로서 조선의 국고를 장학함.
러일전쟁 일본 승리. 포츠머스 강화조약체결로 대한제국의 목을 죄게 됨.
미·일 태프트-가쓰라 조약, 영·일 제 2차 영일동맹을 통해 한반도를 일본이 장악하는 것을 미.·영이 인정
을사늑약을 무력을 통해 체결, 고종은 불허하였으나 무력으로 집행
결과 :
통감정치를 실시하여 내정간섭 시작. 통신, 철도를 접수하고 토지를 약탈하며 식민지화의 발판으로 삼음.
고종은 헤이그 밀사파견 등을 통해 저항하였으나 결국 이를 빌미로 일본에 의해 퇴위당함.
고종의 행동은 세계정세를 읽지 못한 행동이었으나 만국평화회보에 조선의 사연이 게제되는 등의 성과를 보임.
정미조약 체결로 황제위에 통감이 있음을 문서로 확인, 군대해산으로 대한제국의 자위력 해체, 내정간섭 심화
이완용과 데라우치 간에 한일 합방조약이 조인되면서 대한제국 붕괴.
이후 의열투쟁과 의병항쟁이 이어짐, 애국지사들 자결순국.